2025년 6월 25일, 장맛비가 거세게 내리치는 가운데 제2회 경기문화저널 콜로키움이 열렸다. 애초 50명이 참가 신청을 했지만, 우천으로 인해 절반만이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이 빈자리들이 오히려 한국 지역문화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피로감과 무력감,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함이 공존하는 현장이었다.
이 기획을 하면서 신청자가 한 50명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 오려고 했을까?
새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문화는 스스로 설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갈망일까?
본 콜로키움 기획을 할 때 방향 수립에는 극명하게 두 가지로 의견이 나뉘었다.
지역문화는 ‘스스로 설 수 있다’ 와 ‘스스로 설 수 없다’ 라는 의견이 팽팽했다.
다만 이 질문에는 전제가 필요했다.
지역 현장에서 지역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 고상하고 착한 지역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지역문화는 스스로 설 수 있다. 즉 지역을 생각할 때 아파트 가격이든 저 지역보다 우리가 좀 더 잘 사는 지역이라는 우월감이든 이러한 비루한 자의식들에 대한 인정과 직시를 전제로 한다면, 지역문화는 이미 스스로 서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그것이다.
이 날 참석한 이들의 면면은 한국 지역문화 생태계의 축소판이었다. 한국문화원연합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지역문화진흥원 같은 중앙 기관부터 성북문화재단, 영등포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등 광역 문화재단, 그리고 부산 사상문화원, 대전 중구문화원, 평택문화원, 용인문화원, 인천 미추홀구 학산문화원 등 전국 각지의 기초 문화원까지.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지역문화의 일꾼들이었다.
강승진 전 춘천문화도시센터장은 지난 3년간 지역문화가 겪은 상처를 구체적으로 진단했다. 발제를 통해 사람을 키울 예산의 소멸, 담론과 협의 과정의 부재, 경제환원주의로 인한 문화의 숫자화를 지적하면서도, 짐멜의 문화이론을 통해 희망의 철학적 근거를 모색했다. 그는 문화를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로 정의하며, 객관문화와 주관문화의 균형과 회복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형 인간이 아닌,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문화적 인간의 복원을 강조했다.
강현조 전 지역문화진흥원 팀장은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 10년간의 정책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중앙통제형에서 지역자율형으로의 전환이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전달체계는 여전히 비효율적이며, 거버넌스는 자문기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영국의 레벨링업 정책을 참조하여 지역이 기획하고 중앙은 지원하는 패러다임 전환과 성과협약형 포괄보조 방식의 도입을 제안했다.
고영직 편집위원장은 일본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의 후퇴학 개념을 빌려 역발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근대의 덧셈과 곱셈 논리에서 뺄셈과 나눗셈의 세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성장과 활성화에 집착하는 기존 정책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었다. 그가 제시한 촌력(村力)개념은 국민총력이 아닌 시골의 자생적 힘을 의미하며, 일본 가미야마(龜山)의 사례처럼 1인칭의 물음으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만이 지속가능하다는 통찰을 담고 있었다.
김정이 비커밍콜렉티브 대표는 인력양성이라는 용어에 내재된 위계구조를 비판적으로 해체했다. 양성이라는 개념이 전제하는 일방향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를 문제 삼으며, 사람의 힘인 인력이 어떻게 끌어당기는 힘인 인력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실천공동체 이론을 통해 학습이 정보 축적이 아닌 문화적 실천의 장에 참여하는 과정임을 강조하며, 되기의 존재론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염신규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은 윤석열 정부 지역문화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법정 계획인 제3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의 미수립, 지역이라는 용어가 다시 지방으로 회귀한 것은 중앙의 식민적 시각이 부활했음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역문화자치를 가로막는 세 가지 걸림돌로 편협한 공론장, 경제적 효과에 대한 조급증, 사람과 관계라는 비가시적 기반의 부재를 지적하며, 인문적 도시 읽기를 통한 입체적 서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실비 편집위원은 탈성장 담론을 지역문화에 접목시켜 성장하지 않는 도시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평택시문화재단의 ‘한 사람이 온다’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주민이 문화의 수혜자에서 기획자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었고, 여러 문화원의 기록 사업을 통해 주민이 기록의 대상이 아닌 생산자가 되는 사례를 제시했다. 성장하지 않는 도시는 무능한 도시가 아니라 효율성과 확장 대신 관계의 밀도와 삶의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두는 도시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여섯 명의 발표자가 제시한 관점들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출발했지만, 몇 가지 공통된 문제의식으로 수렴되었다.
첫째, 상실과 붕괴의 진단이 있었다. 강승진의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탄식, 염신규의 법적 공백 지적, 강현조의 10년 정책 실패 평가는 모두 지난 시간의 상처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둘째, 언어와 담론의 전환 요구가 있었다. 고영직의 '후퇴학'과 '촌력', 김정이의 '인력양성' 해체, 최실비의 '성장하지 않는 도시'는 모두 기존 패러다임의 언어를 넘어서려는 시도였다.
셋째,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강조가 있었다. 강승진의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직 사람이 있다", 김정이의 '되기의 존재론', 최실비의 '1인칭 프로젝트'는 모두 문화정책의 중심에 사람을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자, 회의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준비된 원고의 정제된 언어가 아닌, 10년 넘게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과 솔직한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용인문화원 김지혜 사무국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저는 궁금한 게 있어요. 지자체 또는 국가 재정에서 문화한테 주는 돈은 왜 이렇게 아까워하지? 다른 데 주는 돈은 기꺼이 투자라고 하는데, 우리한테 주는 돈은 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줄 알고 있지? 문화에 주는 돈은 왜 아까워하고, 다른 데 주는 돈은 기꺼이 투자라 할까요?"
이어서 그는 전략적 접근을 제안했다.
"저는 경영학과 교육학을 전공했어요. 자본주의에서는 경영을 배제하고 얘기하면 설득력이 굉장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언어로 말해줘야 한다는 거죠. 문화는 수익은 나지 않지만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킨다. 복지가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니까 투자하는 것처럼, 문화도 그런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 발언에 대한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저는 20년 동안 그런 연구를 해왔는데, 제 생각은 결론으로 그런 연구가 필요 없다는 게 제 결론이에요."
이어 자신의 주장을 상세히 설명했다. "영국에서 문화예술 향유로 감기를 덜 걸린다는 연구를 발표했어요. 그때 가디언지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대마초가 감기 예방 효과가 더 높다면 예술 지원 안 하고 대마초 살 거냐'고 조롱했습니다. 25년 동안 그들의 언어에 맞춰왔는데, 결국 종속된 일밖에 안 하게 되었어요. 기재부나 경제부처, KDI의 언어에 맞춰서 하는 부분을 끊어내고, 문화의 가치나 언어를 새로 얘기해야 합니다."
대전중구문화원 박경덕 사무국장의 의견이 더해졌다.
"저는 10년 정도 사무국장을 했는데요, 그동안 서로 메시지 전달이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원의 필요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에 우리 자리를 못 찾았어요. 행정은 수치와 계획으로 움직입니다. 그들의 언어로 요구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습니다."
이어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소상공인, 청년창업 지원을 보세요. 이미 우리가 했던 것들입니다. 진행 과정, 사업 계획, 결과물 성과 공유, 다 우리가 했던 것들인데 그들은 돈을 받고 우리는 못 받습니다. 왜냐? 우리는 예산 낭비해도 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거든요. 그런데 창업 담당자는 뭐라고 답합니까? '100개 지원해서 1개 성공하면 큰 성공입니다'라고 해요. 문화 쪽엔 왜 그런 개념이 없을까요?"
소통과 언어 논쟁이 한창일 때, 부산사상문화원 조영미 사무국장의 의견이 이어졌다. 이 논의가 사치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경기도나 서울 지역은 부러워요. 진짜로."
그는 부산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우리가 10년간 키운 퍼포먼스 팀들이 다 서울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축제를 하게 되면 그런 수준 높은 팀들이 서울에서 내려옵니다. 여기서는 출연료를 후려치는데, 서울에서는 제값을 줍니다. 지역을 벗어나서야 오히려 개런티가 늘어납니다. 우리가 키운 팀을 우리 축제에서 만나려면 서울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젊은 친구들이 '경기도로 도망가고 서울로 도망간다'고 얘기해요. 도망이라는 표현을 써요. 그만큼 절박한 거죠. 부산에 남아있는 청년들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어 정치적 왜곡도 지적했다. "문화행사를 표를 모으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태적인 문화로 도태되어진. 정치인들에게는 청년 예술가 100명보다 경로당 한 군데에 모여있는 100명이 더 중요합니다. 4년마다 선거가 있으니까요."
성북문화재단 권경우 부장이 이에 공감하며 서울의 상황을 전했다.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자체장이나 지역 의원들은 지역을 표로 봅니다. 4년 내내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거죠. 청년 예술가 100명이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어마어마한 가능성과 잠재성이 있지만, 이 청년도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거예요. 그러면 경로당 한 군데 가서 100명의 노인을 만나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권경우 부장은 성북의 경험을 상세히 소개했다. "저희가 '예술마을 만들기'라는 사업을 했어요. 20개 동의 특성을 파악하고, 주민과 청년이 함께 거버넌스를 구성했습니다. 철저하게 거버넌스 형태로, 밑에서부터 논의하고 사업을 직접 만들어내는 방식이었죠. 한때 구청에 10개 과 정도가 관여했는데, 지금은 2~3개 정도밖에 관여를 안 합니다. 거버넌스가 축소된 거죠."
강현조 전 지역문화진흥원 팀장이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저는 최근 하동으로 내려갔어요. 한 달도 안 됐는데 제가 제일 젊어요. 40대 중반인데 이장 선거에 나가야 될 판입니다. 옆집에 빈집이 엄청 많이 있고, 할머니가 내일 아침에 살아계신지 인사를 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하동군에서는 협력활동가라는 사업이 있어요. 행안부와 문체부 예산이 복합적으로 뭉쳐진 사업인데, 지역 네트워킹 비용을 구성합니다. 작지만 그래도 지역에서는 의미 있는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천미추홀구 학산문화원 박성희 사무국장은 또 다른 구조적 문제를 제기했다. "지역에서 문화 관련 일을 기획할 때 복지, 평생학습 분야와 연계되지 않으면 진행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연계조차 단편적이고 분절적이라는 거예요. 복지 분야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많이 하지만, 실제 문화 쪽과 연결되지 않아요." 강승진 전 센터장이 깊이 공감하며 응답했다. "지역문화 전달체계 자체가 문체부 라인을 통해 내려오는데, 지역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느 통로로 왔느냐가 중요하지 않거든요. 기초로 오게 되면 모든 것들이 만나요. 교육과 복지와 문화가. 그런데 그 고민들이 실제로 없는 거죠. 생활권 단위의 서비스로 재편해야 합니다." 이어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읍면동을 기준으로 문화기획자가 의무 배치되어 코디네이팅 권한을 갖는다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읍면동사무소에서 문화기획자가 현장을 코디네이팅하고 권한을 가지면 통합적 서비스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벽이 높은 현실도 함께 언급했다. "물론 관료제의 저항이 굉장히 세죠. 자기 일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관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지치지 않고 떠드는 게 중요합니다." 염신규 소장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관료 집단이 규정과 법률에 따라 체계적으로 일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필요한 일들을 중심으로 하고, 우선순위는 철저하게 부처 내부 논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이 끝났는데 제3차는 아직도 없습니다. 이건 명백한 법률 위반입니다." 이 시점에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양혜원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2024년까지가 2차 기간이었는데, 2025년 3차 계획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건 맞습니다. 지금 준비 중인데요, 이번에는 동시계획 수립을 추진합니다. 중앙에서 기본계획을 세우고 지자체가 시행계획을 세우는 하향식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하는 겁니다." 그는 신중하게 덧붙였다. "광역 단위 공무원이 자료만 받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반영하려고 합니다. 11월에는 권역별 토론회를 통해 중앙과 지역의 내용을 함께 논의할 예정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나 잘 추진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방문화원 지원/육성에 관한 기본계획도 2차년도가 곧 도래합니다. 그때는 좀더 자주 만나서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려면 이런 소통이 필수적입니다."
토론이 깊어지면서 참가자들은 문제 제기를 넘어 자기 성찰로 향했다. 고영직 편집위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서관이 단순한 라이브러리가 아니라 ‘라이프(Life)러리’가 되어야 합니다. 용인 느티나무 도서관처럼 지역사회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고립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킵니다. 누구나 고독하지만 고립된 존재가 되지 않도록, 지역에서 곁을 내주고 사회적 약자를 품어줄 수 있는 것이 지역문화정책의 방향입니다."
그는 의료 문제와 문화의 연결을 강조했다. "외로움 문제에 문화예술이 예방적 사회정책 기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1930년대 북유럽이 선구적으로 했던 것처럼. 지역 의사들과 협력해서 외로움 처방, 문화 처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염신규 소장은 정치적 각성을 촉구했다. "점잖은 목소리로 전달하는 방법도 필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의지가 관철될 수 없습니다.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강력하게 요구할 때는 결연한 태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때로는 강력한 요구를 낼 수 있는 그런 결연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강승진 전 센터장은 정리의 의미로 콜로키움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지난 3년간 가장 큰 손실은 담론과 합의의 장의 상실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 자기검열과 정제된 언어만 오가는 토론회. 오늘 이 자리가 그런 공백을 메우는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토론이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진행자가 마무리를 시도했지만, 참가자들의 발언 요청은 계속되었다.
이번 콜로키움의 가장 큰 성과는 단절되었던 소통의 복원이었다. 중앙 정책기관, 중간지원조직, 기초 문화기관의 관계자들이 위계 없이 한자리에 모여 날것의 언어로 대화했다. 준비된 원고가 아닌, 현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목소리들이 오갔다.
지역문화정책의 구조적 문제들이 명확히 드러났다. 언어와 담론의 충돌, 지역 간 문화격차의 실상, 행정 칸막이의 모순, 법적 공백의 문제가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제시되었다. 특히 문화예산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둘러싼 김지혜-김규원의 논쟁은 한국 문화정책이 직면한 존재론적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실행 가능한 대안들도 제시되었다. 읍면동 단위 문화기획자 배치, 성과협약형 포괄보조 방식, 동시계획 수립, 지역 간 네트워크 구축 등 구체적인 제안들이 논의되었다. 무엇보다 '촌력', '되기의 존재론', '성장하지 않는 도시' 등 기존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담론과 언어가 공유되었다.
그러나 여전한 한계도 있었다. 여전히 너무 착하고 적나라하지 못하다는 자기반성이었다. 진정한 메시지는 술자리에서 나온다는 말, 그 정도의 수준의 담론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언어로 끌어내보자는 목표는 어찌보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공식 담론의 형태는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보호막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직후라는 시점의 특수성, 문체부 관계자들의 부재, 여전히 남아있는 자기검열의 흔적들이 더 날카로운 비판을 제약했던 측면도 있다.
지역 간 견해 차이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와 농촌의 서로 다른 조건과 요구가 깊이 있게 논의되지 못했다. 조영미 사무국장의 "경기도가 부럽다"는 고백이 던진 파장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채 남은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무엇보다 시민과 주민의 목소리가 직접 들리지 않았다. 문화정책 관계자들끼리의 논의로 진행되면서, 정작 문화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들의 관점이 충분히 담기지 못했다. 최실비 편집위원이 소개한 '한 사람이 온다' 프로젝트처럼 시민이 직접 기획자가 되는 사례들이 있는데 이번 콜로키움에서 그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담지 못한 것은 한계가 될 수 있다.
콜로키움이 끝나갈 무렵, 고영직 편집위원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오늘 논의를 통해 우리 언어나 사고방식이 너무 관성화된 측면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같이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강승진 전 센터장의 마지막 발언이 콜로키움의 정신을 요약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변화를 만드는 기쁨을 경험한 자아가 타인의 고통까지 돌보는 힘을 만들고, 기댈 수 있는 사람, 기대할 수 있는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의 출발점이 됩니다."
"지역문화는 스스로 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합의된 답은 없다. 그러나 이날의 치열한 논쟁과 진솔한 증언들은 지역문화가 아직은 살아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언어로 응답한 다성적 목소리들, 그 불협화음이야말로 한국 지역문화의 생생한 현재였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올해 두 번의 콜로키움을 더 개최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번이 시작입니다. 앞으로 더 위험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참가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면서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건물 밖 빗속에서도 못다 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단절되었던 관계의 복원, 침묵했던 목소리의 부활, 그리고 다시 시작된 연대의 가능성.
지역문화의 자립을 향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아니 상처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가능성은 열려있다. 빗속에서 시작된 이날의 대화가 어떤 변화의 씨앗이 될지, 그것은 앞으로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