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창원 고향집과 동네는 88올림픽쯤 철거되었다. 우리 가족은 2층 빨간 벽돌 주택지구로 이사를 갔고, 동생들은 교육지구에 설립된 학교에 다녔다. 창원시는 땅 위에 바둑판을 그려 여기는 산업공단, 여기는 상업지구, 여기는 주택지구 등으로 장소의 기억과 상관없는 새로운 역할을 땅에 부여하고 수많은 원주민 이주자를 만들고 새로운 노동인구를 유입시키며 탄생했다. 이후 100만 통합창원시는 기억이 저장된 그 땅에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 각 지역의 정체성을 도시의 효율성으로 또 한 번 덮고 탄생했다. 이것은 지역발전일까? 지역소멸일까? 사람이 살던 그 터에 여전히 사람과 물자가 드나드니 소멸은 아닌 거 같은데 나에게는 동네소멸에 대한 기억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아비투스(habitus)’를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즉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라고 정의했다.*1) 즉, 아비투스는 사회 속에서 반복된 경험과 환경을 통해 형성된 사고와 습관의 체계이고, 개인의 선택과 취향은 단순히 ‘자유로운 결정’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환경이 몸에 밴 결과라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 최정점의 도시에서 자라 온 환경이 내 아비투스에 영향을 끼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15년 간 서울의 기업에서 마케팅과 전략기획을 담당했다. 그때의 나는 지역을 ‘비효율’로 여겼다. 같은 계획을 수립해도 어떤 지역은 잘되고, 어떤 지역은 잘 안된다. 출장만 가도 “그건 여기선 안 돼요. 지역을 몰라서 그래요”라는 말에 말문이 막히곤 했다. 그런 내가 ‘문화도시’라는 이름의 지역문화 현장으로 이직을 했으니.... 내 안에서 커다란 균열이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나는 이주한 지역에서 삶의 언어를 다시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로컬 속에서 사람, 장소, 공동체와 관계맺고, 시간을 들여 지역을 관찰한다. 이 일이 지역소멸을 구원하는 단초를 찾는 과정이자 내 삶의 서사를 지키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내 개인사를 털어놓는 이유는 2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문화의 미래에 대한 11가지 생각』, 『뉴 로컬 컬처 키워드』는 ‘문화’를 제도의 기능이 아닌 ‘삶의 작동 원리’로 재해석하고, 성장사회에서 로컬사회로 시대가 이동했음을 다양한 관점과 사례로 이야기한다. 필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개인의 삶이 지역공동체의 행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사회구조를 만드는 공공정책과 긴밀히 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내 삶 역시 그러하다. 내 이야기이자, 우리 세대의 서사일 뿐만 아니라 내 딸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25년 전, 일자리 때문에 서울을 가야 했던 청년의 현실을 대물림하며 지역문화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01. 『문화의 미래에 대한 11가지 생각』, 『뉴 로컬 컬처 키워드』 표지. 우리 사회가 마주한 11개 의제는 로컬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안남어머니학교 수업이 있는 날 아침이면 조용한 들썩임이 작은 마을 전체를 감쌌다.”- 『뉴 로컬 컬처 키워드』 19쪽
박누리는 충북 옥천군 안남면 ‘안남어머니학교’의 분위기를‘조용한 들썩임’으로 감각한다. 『뉴 로컬 컬처 키워드』는 밀양, 서산, 동인천, 김제, 강화 등 18곳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다양하게 들썩이는 이야기를 관통하며, 지역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감각의 주체’로 바라본다. 책의 기획 자체가 일본의 가미야마처럼 지역 자원을 발굴해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 문화를 일궈나가는 사람이나 장소, 지역을 찾아 소개하자는 것이었기에 당연한 관점인지도 모르겠다. 책에 등장하는 지역에서 문화는 축제나 예술사업이 아니라 삶을 이어주는 관계망이자 ‘자본과 기술이 해결할 수 없는 공백’*2)을 채워주는 솔루션으로 등장한다. 비단 이곳들 뿐일까? 옥천의 문해교육이 여성 노인들에게 삶의 자존을 회복시킨 이야기를 보면서 칠곡할매들이 시를 쓰며 한글을 익히고, 시집을 펴내고, 칠곡할매글꼴을 만들고, 래퍼가 되어 힙합 서바이벌 예능 쇼미더머니에 도전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순천 소녀시대 할매들이 그림일기로 한글을 익히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고 전시하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작은 문화적 움직임이 지역민의 삶에 불러오는 큰 변화를 보면 정말 문화는 실용적 관점에서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함이 틀림없다. 도시재생 같은 대규모 사업의 시끌벅적 담대한 시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쇠퇴의 길을 걷는 지역도 많은데 말이다.
좌 02.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글을 몰라 이제야 전하는 편지』 표지. 가난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뒤늦게 풀어내는 진한 인생 이야기
우 03. 2019년 미국 미켈슨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들(사진제공=순천시)
지역에는 정말 조용한 들썩임이 유용할까? 작은 움직임이 지역소멸을 구원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힌트가 최도인이 그린 [로컬·문화·라이프스타일의 관계도]에 있다. 라도삼이 엮은 『문화의 미래에 대한 11가지 생각』은 전환시대 이후, 문화가 사회의 중심에 서서 추상이 아닌 사회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최도인은 일곱번째 생각 ‘로컬’의 필자인데 나와 공동체의 경계가 넘나들고 있는 현대적 로컬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04. 『문화의 미래에 대한 11가지 생각』221쪽. 일곱번째 생각 ‘로컬’의 필자 최도인이 그런 로컬과 문화, 라이프스타일의 관계도
최도인이 생각하는 좋은 도시는 문화가 라이프스타일이 되고, 라이프스타일이 문화가 되는 동네이다. 개인화된 문화의 중력이 미치는 곳, 그곳이 바로 ‘현대적 로컬’이라는 건데, 이 기준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예산이 소요된 도시재생사업보다 단츨하게 출발한 어떤 프로그램 하나가 좋은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사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단계로 우리 사회는 이미 전환되었다.
아홉 번째 생각 ‘문화자치’의 필자 김규원 역시 개인을 강조한다. 문화 분권이 실현되는 궁극적 단위가 ‘개인’이며, 개개인의 시민이 주도하는 정책 환경 형성이 문화 분권의 목적이라고 언급하면서 최도인이 분석한 현재 로컬 환경에 덧대어 개인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공동체와 지역에 주목한다. 핵심은 역할의 구분이다. 김규원은 국가는 ‘지역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문화 격차를 해소하여 모든 국민의 기초적인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는 문화 균점 정책’을 취해야 하고, 지역은 철학과 ‘정성적’지표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05. 『문화의 미래에 대한 11가지 생각』 280쪽. 아홉번째 생각 ‘문화자치’의 필자 김규원이 그런 (지역)문화 분권에서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민주화
우리는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식에서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하나의 참사가 아니라 305명의 참사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삶의 관점에서 보면, 인구소멸지역이라고 퉁치기에는 그곳에 사는 한 명 한 명의 서사가 다르고 소중하다. 그 측면에서 문화는 지역과 사람을 관계 속에서 작동하게 하는 실질적 기능을 가진다.
양림동 사람들은 ‘예술이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자문하고 양림미술관거리협의체를 결성하고, ‘광주비엔날레’의 빈틈을 메우고 광주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창을 제공하는‘양림골목비엔날레’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옥천군 사람들은‘내가 살던 동네, 내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는 노인들의 소망을 지역이 함께 풀어야 할 공동 과제로 인식하고 주간보호센터 설립같은 대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전에서는 ‘내가 그동안 남의 감정에 무디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과 함께 새로운 질문을 향해 나아가는 오토 *3)의 다음 무대를 만든다.
이 지점에서 국가에게 궁금한 점이 생긴다. 국가는 옥천군 노인의 소망이 한국 노인의 소망인지 지역적 특색인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만일 사는 지역과 상관없이 내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은 노인이 존재한다면 문화 균점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삶의 들썩임에 맞장구를 쳐주는 정책을 개발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예산을 확보해서 지역으로 보내주는 일이 국가의 역할 아닌가?
지역에게 궁금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 내가 사는 지역은 조용하게 들썩임이 일어나고 있는가?
- 이곳의 ‘존재’를 제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지역의 문화적 아비투스는 무엇인가?
소멸한 건 성장사회다. 공동체의 문화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로컬사회로 전환한 지금,‘살고 싶은 삶’을 향한 바람을 제도화하고, 실행과정에서 지역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역문화정책의 변주를 바란다.
*1) 도리스 메르틴, 『아비투스』, 다산초당, 2020
*2) ‘자본과 기술이 해결할 수 없는 공백’이라는 표현은 ‘초연결’ 시대에도 ‘연결’은 여전히 로컬 현장의 핵심 키워드임을 설명하는 것으로 책의 43쪽에 나온다.
*3) 어느 지역이든 들여다보면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대전에는 그 색을 한창 찬란히 빛나게 하는 여성 복합 창작팀 ‘오토烏兔, Owtto’가 있다.(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