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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정책/이슈>
전환의 기로에 선 문화학교, 30년의 관성을 깰 수 있을까?
오다예 | 2024 경기도문화원 총람 연구, 2025 경기도 문화학교 데이터 연구
지역문화의 거점, 전환의 기로에 선 문화학교

경기도 31개 지방문화원은 지난 30여 년간 지역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의 문화 복지를 지탱해 왔습니다. 특히 1991년 문화부가 추진한 '문화학교 운동'은 전통문화 교육을 중심으로 한 공공 문화교육 프로그램의 기반을 형성하였으며, 이는 오늘날 지역문화원 문화학교 운영의 제도적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문화학교는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며 지역 문화 기반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 주 4.5일제 도입에 따른 여가 시간 구조의 변화, 그리고 생성형 AI가 일상이 된 디지털 시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경기도 지역문화원 문화학교의 현재를 진단한 결과, 약 30여 년 전 형성된 정책 모델과 운영 방식이 현재까지도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문화학교는 안정적인 운영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제도적 틀과 교육 구조는 초기 문화학교 모델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제 문화학교는 중요한 전환의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기존의 관성적인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미래지향적이고 포용적인 문화교육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데이터로 본 경기도 문화학교의 현황과 과제

「2024년 경기도 지역문화원 총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문화학교는 1990년대 형성된 운영 구조를 큰 변화 없이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1. 장르의 편중과 '실기 습득' 중심으로 집중된 교육 내용

현재 경기도 지역문화원의 교육 프로그램은 특정 장르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운영 중인 575개 프로그램 중 음악, 미술, 무용 3개 분야가 전체의 81.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중 95.7%에 달하는 강좌가 단순한 실기 및 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인문학, 언어, 건강 등 일상과 밀접한 타 분야는 각각 10% 내외의 낮은 비중을 보입니다. 또한 문화예술 감상이나 이해,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주제형 교육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수준입니다.

전체 강좌 분야 비율 그림 1 [전체 강좌 분야 비율]

2. 세대와 시간의 사각지대: 95.1%의 성인 중심 구조

교육 대상의 불균형 또한 심각한 수준입니다. 전체 프로그램의 95.1%가 성인 대상으로 운영되며, 실제 참여자는 중장년층과 노년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영아, 유아,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특화 프로그램은 사실상 전무하거나 극소수에 불과하여, 생애주기별 문화교육 체계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운영 시간과도 직결됩니다. 주말 운영은 2.6%, 야간 운영은 6.8%에 불과하며 대부분 평일 오전 시간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직장인, 학생, 청년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며 특정 계층만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폐쇄적 구조의 원인이 됩니다.

교육 대상에서 특정 연령을 포함하는 강좌 수 그림 2 [교육 대상에서 특정 연령을 포함하는 강좌 수]

운영 요일 별 강좌 수 그림 3 [운영 요일 별 강좌 수]

강좌 운영 시간대 비율 그림 4 [강좌 운영 시간대 비율]

3. '교육'보다는 '강좌 운영'에 가까운 운영 구조

문화학교의 운영 규정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조항이 강좌 개설, 수강생 모집, 수강료 납부와 환불, 강좌 폐강 기준, 강사 계약 등과 같은 운영 관리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문화학교라는 명칭에서 '학교' 또는 '대학'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영 구조는 단계적인 교육과정을 갖춘 교육기관이라기보다 단기 강좌의 집합체에 가까운 구조를 보입니다. 교육 과정의 단계 설정, 학습 성취 기준, 교육 평가 체계 등은 규정에서 거의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강좌 개설 방식 역시 시민의 학습 수요를 기반으로 한 수요 중심 구조라기보다는 사무국의 기획이나 강사의 제안에 의존하는 공급 중심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좌의 유지 여부는 일정 수 이상의 수강생 확보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이며 정원이 미달될 경우 폐강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좌 개설 동기 비중 그림 5 [강좌 개설 동기 비중]

4. 예산 구조의 역설: 수강료 중심 운영이 부른 정체

문화학교 예산의 수입처를 보면 자부담 비율이 59.7%로 지자체 보조금(39.6%)보다 높습니다. 자부담 수입의 88.1%가 수강료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재정 자율성 면에서는 긍정적이나 운영 측면에서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수강료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수강생들이 선호하는 인기 실기 강좌를 폐강하지 못하고 반복 운영하게 되어, 새로운 정책적 변화나 실험적인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문화학교 예산의 수입 항목 비율 그림 6 [문화학교 예산의 수입 항목 비율]

자부담 세부 항목 비율 그림 7 [자부담 세부 항목 비율]

5. 강사 중심 프로그램 운영, 담당 운영 인력 역할의 한계

문화학교 운영 인력의 주요 역할은 교육 기획보다는 관리 기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운영 인력의 역할은 강좌 운영, 행정 관리, 민원 대응 등과 같은 업무가 중심을 이루며, 교육 내용 기획이나 교육 과정 설계, 장기적인 교육 방향 설정과 같은 기획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입니다.

22개 문화원에서 '신규 프로그램 기획 및 제안' 역할을 표기했지만 '커리큘럼 구성 및 변경'에 있어서는 강사 재량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사의 역할 또한 교육의 공동 기획자로서 참여하기보다는 외부에서 강좌를 제공하는 강의 제공자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인력 운영 구조는 문화학교가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구축하기보다는 개별 강좌 중심의 운영 방식에 머무르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문화학교 담당자 역할 그림 8 [문화학교 담당자 역할(복수 응답)]

변화의 조짐: 자체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문화원들

고착화된 것처럼 보이는 지표 속에서도 일부 문화원은 자체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각각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문화학교의 변화 전략 수립에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이천문화원: "이천이기 때문에 가능한 교육" (지역 소재 및 자원 연결)

이천문화원은 단순한 기능 전수를 넘어, 지역의 역사와 자원을 교육 내용에 적극적으로 융합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지역 정체성 강화: 강좌 개설 시 '이천의 전설과 설화'를 활용하면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 디테일한 기획을 통해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 대표 프로그램: '이천 쌀과 만난 건강 케이크', '살아 숨 쉬는 이천 이야기', '이섭명리 생활역학' 등 지역의 스토리, 자원을 연결한 강좌를 운영합니다.

• 타 기관(평생학습관 등)과 중복되지 않는 차별성을 유의사항으로 명시하며 '문화원만의 고유 영역'을 확보했습니다.

2. 용인문화원: "문화학교를 '교육사업의 한 축'으로 보기" (문화학교 구조 확장)

문화학교는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운영규정과 강좌 중심 운영 방식으로 인해, 프로그램 형식이나 대상 확장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용인문화원은 문화학교 운영규정 자체를 바꾸기보다 문화원 전체 교육사업 구조 안에서 문화학교의 기능을 재배치함으로써 변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 문화대학 외 Y-로드 문화학교 운영: 성인 중심 프로그램인 문화대학 외에 청소년, 가족, 교사가 중심이 되는 Y-로드 문화학교를 별도 운영합니다.

• Y-로드 문화학교를 지역문화자산 기반의 미래세대 문화교육 플랫폼으로 정의하고, 학교, 지역단체 등과 연결하여 문화교육의 외연을 확장했습니다.

• 문화학교가 성인 대상 교육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사업 분리와 역할 재설정을 통해 보완하는 변화 전략을 만들었습니다.

3. 수원문화원: "경계를 허무는 포용적 교육" (대상 및 시간의 확장)

수원문화원은 성인과 중장년층에 편중된(95.1%) 기존 수강생 구조를 깨고, 어린이 이주민 등 특정 대상을 명확히 설정했습니다.

• 다양한 세대와 계층: 영·유아 및 청년층 프로그램이 전무한 일반적인 상황과 달리, '어린이 문화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 세대를 포진시켰습니다.

• 다문화 및 이주민 포용: '이주민 한국어반', '결혼 이주 여성 합창반' 등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들을 문화적 주체로 끌어들였습니다.

• '이용자(수강생)의 연령, 언어, 생활 조건을 고려한 구성', '문화 향유 이전에 접근성과 참여 조건'을 함께 설계한 사례로, 총람 전체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기능·취미 중심 성인 대상 프로그램과는 대상 인식의 출발점 자체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위의 세 사례는 공통적으로 문화학교 발전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대규모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맞닥뜨린 문제들을 부분적으로 개선하면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강좌 관리'를 넘어 '교육 플랫폼'의 시대로

문화학교는 문화원의 대표 사업으로 자리 잡은 만큼, 이제 단순한 취미 강좌의 집합을 넘어 시민의 문화적 삶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핵심 교육 플랫폼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지역문화 조사·기록·전승이라는 문화원의 고유 기능을 기반으로 문화학교를 지역 문화의 생산과 축적을 이끄는 교육 거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문화학교 운영 구조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현재 강좌 중심으로 운영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단계적 교육과정과 장기적인 학습 구조를 갖춘 교육 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또한 프로그램 기획 과정에서 시민 수요를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수요 조사와 참여형 기획 구조를 마련함으로써 공급 중심의 강좌 개설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 내용 측면에서도 기존의 실기 중심 교육을 넘어 지역의 역사·문화·생활과 연결된 지역 기반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창작·연구·기록 활동과 연계된 공동 창작형 교육 모델을 도입하여 단순한 기술 습득 교육을 넘어 지역 문화 생산의 기반으로 기능해야 합니다.

운영 구조 역시 다양한 시민 참여가 가능하도록 유연하게 개선되어야 합니다. 현재 중장년층 중심으로 형성된 참여 구조를 넘어 청년, 직장인, 해외 이주민 등 다양한 생활 조건을 가진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 시간과 프로그램 방식의 다양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재정 구조 또한 보조금과 수강료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공모 사업, 지역 협력 사업, 민관 협력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다 다각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실험과 운영 구조 개선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개별 문화원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우며, 운영 규정, 인력 구조, 평가 체계, 강사 자원 등 구조적 조건의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원연합회는 일률적인 운영을 요구하기보다는 공통 언어와 가이드라인, 비교 가능한 데이터 체계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각 문화원은 현장의 환경과 요구사항에 반응하며 문화학교를 정책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구조를 넘어 지역기반 문화예술교육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지난 30년의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30년 동안 문화학교가 지역 주민의 삶과 더욱 깊이 연결되는 교육 기반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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