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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평> <사업>
_ 경기도 지역문화원 ‘문화학교’를 성찰한다 “문화원의 흉터를 숨기고 싶었다”
박정근 | 의정부문화원 사무국장

그동안 지역문화원이 운영해온 ‘문화학교’는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문화원의 창구였다. 문화원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있는 핵심사업으로 이해되고 인식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원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문화원의 위기와 맞물려 항상 첫 번째 문제는 문화학교가 등장한다. 마치 가장 보여주기 싫은 ‘흉터’를 옷 속에 숨겨두고 있으면서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어여쁜 소녀처럼….
2020년, 코로나19는 세상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지역문화원도 자연스럽게 멈추었다. 우리가 그토록 노력해왔던 연결과 소통의 가치는 안전을 앞세운 통제 속에 멈춤을 강요받았다. 비단 문화원만 그런 상황은 아니었을 텐데도 문화원이 느끼는 상실감은 무척이나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지역문화원은 관성처럼 바쁘게 돌아가던 현실에 치어 지속적으로 자잘한 상처를 입고 있음에도 그 상처의 원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냥그냥 지나쳐왔으며, 그 상처는 결국 치료 시기를 놓쳐 곪아 터지고 결국 숨기고 싶은 흉터로 남게 되었다.

원조 타령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의정부문화원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문화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된 1993년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의정부에서 지역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기관은 문화원이 유일했고, 다양한 지역문화사업은 문화원에 집중되었다. 특히 1992년부터 시작한 문화학교는 ‘의정부 시민 모두가 한 사람 한 문화를 익혀 뿌리내리게 하는 시민문화의 샘터’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명실공히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중심으로 시민과 행정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문화원은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원조임은 분명하다 할 수 있다. 나 역시 과거의 영광을 순수하게 기억하는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더욱더 문화원의 위기가 달갑지 않다.
2022년 현재 의정부에는 문화재단, 평생학습원, 청소년육성재단, 노인복지관 등 다양한 문화사업을 하는 기관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서도 문화예술 사업에 손을 대고 있어 실제로는 문화 과잉공급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각자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다. 그것도 VIP 대접을 받으면서 말이다.

2020년 평생교육 통계자료를 보면 2007년 대비 시민들은 200% 이상의 참여율이 증가했다. 말 그대로 ‘평생학습’에 대한 욕구가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직업능력(자격증) 향상과 인문·문화·예술로 양분되어 있으며, 특히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평생교육을 위해 소비자의 자기 부담 지출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상황을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문화복지 차원의 무료 강좌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 프로그램 참여 시간에 대한 자료를 보면 50% 가량 줄어들었는데 이는 프로그램의 다양화에 따라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한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보다는 유행과 관심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결과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소비자들, 즉 시민들의 욕구 역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문화복지를 표방하는 다양한 기관들이 풍부한 예산과 행정의 지원을 받으며 업그레이드된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경쟁하듯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원만의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과거의 운영 방식만을 답보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문화원 문화학교, 새로운 ‘진화’를 위하여

코로나19 여파로 문화원이 멈추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높아졌다. 이 시점에 경기도문화원연합회가 제안한 ‘경기도문화원 진화 프로젝트’는 정말로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진화 프로젝트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억지로 외면했던 지역문화원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우리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코로나19 이후의 지역문화원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첫 번째 연구과제로 [경기도 문화원 지역문화예술교육 발전방안수립 연구사업]을 시작했다. 지역문화원에서 재정립할 필요성이 가장 큰 문화학교에 대한 전반적 사항을 수정하고, 장기적 발전 방안을 마련해 보자는 의도였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이후 새롭게 시작하는 지역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문화원의 진화된 시스템을 갖추려는 강한 의지를 담아보려 했다.
이번 연구사업에서 가장 핵심은 우리 스스로 현재 경기도 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학교를 진단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무국장, 직원으로 구성된 TF팀을 구성했고, 제일 먼저 경기도 31개 문화원을 직접 찾아가 현실을 들여다보면서 다음과 같은 결과에 새삼 놀라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첫째, 문화원에는 전문적으로 문화학교 사업을 담당하는 담당자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형식적으로 담당자가 정해져 있는 곳도 있었으나 오롯이 문화학교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이 없었다. 현실이 이럴진대 평생학습사 또는 유사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전문 인력을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무리인 실정이다. 결국 문화원에는 전문적인 문화예술교육 사업 담당자가 없다는 말이 된다.
둘째, 프로그램 구성 또한 매우 보수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지난 10년간 반복적인 운영 형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은 장기적으로 수강하는 일명 ‘충성고객’을 유지하는 장점은 있으나, 새로운 주민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줄어들어 프로그램 정체(停滯)의 원인이 되고 결국 폐강이 되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셋째, 시대적·환경적 또는 주민들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요자에 대한 욕구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재단, 평생학습센터, 주민센터, 노인복지관, 민간문화센터 등 주변의 유사 기관과 경쟁하는 데에서 오는 위기의식 또는 패배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적극적인 해결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과거 지역에서 문화원의 역할이 중요했던 시기의 영광만을 이야기하며 여전히 ‘원조 타령’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투자(投資)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문화원이 운영하는 문화학교가 지역 내 경쟁에서 밀려나고 주민들과 행정에서조차 외면당하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력, 예산 그리고 시간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문화학교, ‘지역 문화·예술학교’로 전환하자

우리는 그동안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연수에 참가하며 문화원에 종사하는 원장, 사무국장, 직원분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때는 밤을 새워가며 다양한 방법을 토론하며 정답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 문화학교를 어떻게 체계화시켜낼 수 있을까?
- 경기도 문화원만의 문화학교 특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 기존 각 문화원에서 가져왔던 문화학교의 특성은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 문화원과 함께해오는 강사들의 플랫폼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 기존 강사 중심 프로그램을 문화원의 기획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 주민센터, 평생학습센터, 복지관 등과의 경쟁 속에서 문화원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사실 문화원은 그동안 충분히 고민했고, 해답 역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어느 시점 또는 어떤 전환의 계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원을 멈추게 만들었던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새로이 시작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문화원에게는 ‘전환’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지방문화원 문화학교를 ‘지역 문화·예술 학교’로 전환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는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문화학교를 지역이라 명확하게 규정된 범위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역특화 교육사업을 말한다. 세부적으로는 지역 문화학교, 지역 문화예술학교, 지역 예술학교로 구분되어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지역 문화학교는 지역학을 바탕으로 역사, 인문학을 시민과 함께 발굴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지역 주민임을 인식하게 하는 교육사업이다. 양주 역사문화대학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양주 역사문화대학
•사업목적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역사유적을 답사, 탐구하여 조상의 슬기와 얼을 계승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주의 문화유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며, 나아가 유구한 양주의 역사 전통을 대내외에 홍보함으로써 양주를 대표하여 사라져 가는 역사문화유적을 지키고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

•교육과정
○ 1년차: 기초과정 - 6회 강의, 6회 답사(1박2일 1회 포함)
○ 2년차: 심화과정 - 6회 강의, 6회 답사(1박2일 1회 포함)
○ 3년차: 실습과정 - 10회 강의, 10회 답사(1박2일 2회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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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지역 문화예술학교는 지역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을 지키고 전승해가는 교육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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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지역 예술학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다양한 예술 장르와 결합해 지역만의 색(色)을 가지고 표현해내는 시대를 관통하는 교육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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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다

지역문화원에서 운영하는 문화학교는 과거에 멈춰 있다. 정체성, 차별성이 없다는 등 현재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미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해결 방법 역시 명확하게 알고 있다.
첫째,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지역문화·예술교육 정책 연구기관 설립과 지역문화원의 지원을 통해 문화원형 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지역문화원은 기존의 강사 중심 프로그램 기획이 아닌 지역성, 지역학을 바탕으로 하는 수요자 중심의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역 문화원형을 문화교육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경기도 차원의 지역문화·예술교육 축제를 개최해 시민과 행정으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역량 있는 직원을 확보하고 육성하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젠 움직일 때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는 연합회의 역할을, 각 지역문화원은 문화원이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지금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우린 10년 후에도 오늘의 고민과 후회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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