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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눈여겨보기삶의 테두리를 확장하는 방식
최실비 | 편집위원
어딘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서 책을 만드는 출판사 ‘온다프레스’는 책을 만든 지 5년이 훌쩍 넘었고, 지역을 주제로 한 단행본을 이미 몇 권이나 출간해 냈다. 그럼에도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는 “그동안 지역 관련 책을 내오면서 지역 담론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1)”며, “지역에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2)”인지 정의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에서 지역, 로컬을 강조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온갖 정책과 제도들이 지역성강화를 목표로 시행되었으며 지역성 강화는 곧, 지역소멸 위기 극복, 지역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또한 지방분권 가속화에 따라 정책 단위의 담론으로 오르내리는 지역은 각자도생의 의미로 ‘알아서 잘 살아가라’는, 책임회피의 명분이기도 했다. 지역이 화두에 거세게 오를수록 지역은 가난해지고 주변부로 내몰렸다. 게다가 오랫동안 서울과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중앙으로부터 ‘다루어진 지방’의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출판문화는 배제되고 소외되었다. 지역 출판인의 갸웃거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출판 관련 법령과 제도도 2002년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처음으로 마련 되었는데 지역출판에 관한 법적, 제도적 고민은 이후로도 한참이 지난 2015년에야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출판을 어떻게 육성하고 지역의 독서문화와 어떻게 연계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며 출판, 도서관, 서점 등 여러 정책이 따로 놀며 공회전하는 상황이기도 하다*3). 때문에 지역 출판계는 서울에서 만들어진 책의 소비시장으로서 존재하며 주체적인 생산자 역할을 하지 못해 왔다. 지역은 서울에서 만든 책에 담긴 지식으로 채워져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경제를 부흥시켜야 하는 로컬’, ‘인구를 유입시켜야 하는 로컬’과 같은 구호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서의 로컬’, ‘나의 색깔과 맞는 로컬’처럼 지역 담론의 새 길을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있어 눈여겨볼 만하다.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나의 거주지찾기 프로젝트: 춘천편』(온다프레스 2023)는 서울에 거주지를 둔 30대 청년 1인 가구가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은 과연 살 만한 곳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실제 이주 가능성을 이리저리 따져보며 마을 사람들과 삶의 모습, 품은 이야기 등 여러 조건을 살폈다.

.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표지

내게 맞는 속도로 낯선 골목 걷기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는 강원도 춘천문화재단과 강원도 고성의 지역 출판사가 만나 로컬의 본질을 탐구해보자는 기획에서부터 시작됐다. 춘천문화재단과 온다프레스는 ‘담론으로서의 로컬’을 지양하고 ‘실제로서의 로컬’을 탐구에 뜻을 모은 뒤 지역 전문 작가인 서진영 작가를 섭외했다. 서울에 사는 대구 출신 작가가 강원도 춘천 이야기를 공공 영역의 지원을 받아 강원도 고성의 출판사에서 출간했다는 점에서 서울 중심의 출판 사례와는 사뭇 다르다. 작가는 팽창된 로컬 담론 속에서 지역성의 상실을 느끼기도 하면서, 로컬이라는 개념이 각 지역이 갖는 고유한 빛까지 품고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도 로컬, 저기도 로컬, 일단 로컬이라 이름 붙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 말고 정말 살고 싶은, 살기 좋은 동네가 되었는지, 여러 세대에 걸친 인구가 두루 건강한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지, 라는 ‘삶’의 관점에서 지역을 살펴야 한다며 서두를 시작한다.

6개월 남짓 나는 춘천의 곳곳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취재에는 몇 가지 원칙을 두었다. 일단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걷는다. 그래야 도시전반을 ‘인간의 감각’으로 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한 글을 쓸 때는 ‘로컬’이라는 말을 애써 쓰지 않는다. 아직 성기고 설익은 개념인 ‘로컬’을 보기 좋게 흩뿌려 놓기보다는 내가 옮겨놓은 삶의 현장감을 독자들이 느끼면서 그 속에서 그 단어를 어렴풋이 각자 해석해주길 바랐다.*4)

지난 수년간 ‘왜 꼭 서울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서울과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작가는 “도시의 인상은 그럴듯한 수식을 단 도시 브랜드보다 도시의 골목골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에 달려 있다”며 정책이나 담론이 아닌 일상에 녹아든 진짜 로컬을 찾기 위해 낯선 도시를 한 발 한 발 꼼꼼히 걷는다. 지역 출판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조건적인, 낭만적 찬양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과 삶의 현장에 들어가 지역 고유의 색깔을 알아가는 여정은 오히려 독자의 신뢰와 공감대를 얻는다. 길고양이의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들, 시청과 명동이 있는 변화가 골목에 쌓아둔 연탄, 그 연탄을 매개로 한 연탄 사용 가구와 연탄 봉사자들의 인적 네트워크, 우연히 들어선 ‘맡겨놓은 카페’에 시민들이 청소년을 위해 음료를 적립해 두는 방식을 통해 춘천 사람들의 세상살이의 안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본다.

결국 우리는 자기가 경험한 만큼의 세계에 산다. 인구 30만이 안 되는 소도시에 살면서도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메트로폴리스에 살면서도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정해창 목사가 춘천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다고 한 것도 이곳이 문화생활을 하기 좋은 환경이고 이 지역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공연,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개개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임을 인식하고 있는지,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이 있는지, 그 정도를 문화적 수준에 빗대어 표현한 것일 테다. 이런 맥락에서 어디까지가 내 삶의 테두리인지, 내 세게는 어떠한지 가늠해보는 일은 곧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나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와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다 세밀하게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5)

책은 ‘그 도시 살 만한가’라는 질문은 곧 ‘도시의 문화가 전 세대에 걸쳐 골고루 누려지고 있는가’의 질문과 같다는 점을 짚는다. 이 도시의 여건이 내게는 어느 정도로 중요한 삶의 조건인지 새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결국 문화라는 것은 개개인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이 있는지,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지의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 도시의 이야기를 내 삶으로 들여와 ‘어디까지가 내 삶의 테두리일까’ 고민하게 하는 것은 지역의 서사가 가진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확대한 지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책의 의미는, ‘서울이 아닌 지역이 미래 세대의 대안 거주지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부터 내가 살 만한 도시를 찾는 과정을 통해 지역의 서사를 경계 밖으로 꺼내는 것과 더불어 추상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로컬이라는 개념에 구체성을 더하는 시도에 있다.

. 한국지역출판연대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출판물을 망라해 2017년 제주를 시작으로 '한국지역도서전'을 개최하고 있다(한국지역출판연대)

소멸에 맞서는 따뜻한 땅의 이야기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는 지역의 서사를 기록하기 위해 공공의 영역과 민간이 협력한 사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기존에는 개별 출판사 단독으로 책을 기획, 생산, 마케팅하는 출판 활동이 일반적이었으나, 근래에는 지역 소재 출판사, 소형 출판사들이 힘을 모아 공동으로 특정 시리즈를 기획하여 동시 출판하고 공동 마케팅을 펼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협업적인 출판 방식은 자본 시장에 맡겨 도태됨을 방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 지역의 삶을 담고 공유하며 지역의 미래를 만들려는 앞장섬이다. 다양한 방식의 협업과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다,

소비자로서 자본이 잠식한 베스트셀러 판에서 벗어나 따뜻한 땅의 이야기를 듣고, 겪고 싶다. ‘나의 거주지 찾기 프로젝트, 춘천편’을 부제로 단 지역 시리즈의 출현이 반갑다. 지역 출판물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길을 모색하는 마음, 그 마음이 모인 과정과 결과를 살필 기회이기도 하다. 나아가 지역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볼 수 있다. 소멸의 시대, 지역을 주제로 한 책이 많아져 다양한 삶의 모습, 함께 모여 사는 이야기를 애쓰지 않아도 내 주변에서 열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결국 우리는 자기가 경험한 만큼의 세계에 산다’는 작가의 언어가 뚜렷하게 새겨진다. 지역의 서사를 통해 내 삶의 테두리가 어디까지 넓혀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 확장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1) 양선아, [내가 이 도시에 산다면? 30대 청년의 ‘로컬 담론’], 한겨레, 2023. 11. 7.,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15234.html”
*2) 박대우, [어딘가에는 출판사가 있고 독자가 있다], 출판N, 2022. 9.,"https://nzine.kpipa.or.kr/sub/coverstory.php?ptype=view&idx=553"
*3) 장현정, [시민과 지역 중심 출판문화 활성화를 위한 고민들],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2022. 2.,"https://e-archive.bscf.or.kr/27_policy/03_policy_view.php?idx=1717"
*4)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온다프레스, 2023, 9면.
*5) 위의 책, 2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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