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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문화가 있는 날 지역협력형 기획사업 리뷰지방문화원, 안 해본 일을 해보기!
김현수 |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사업팀장
지역협력형 기획사업의 문제의식

2016년부터 전국의 다양한 문화시설 및 기관들이 ‘문화가 있는 날’(이하 문날)을 맞이하여 일상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행사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라는 취지로 ‘문화가 있는 날 참여시설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게 된 지방문화원은 적은 예산으로 더 많은 참여기회를 주기 위해 소액다건의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소액다건 사업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보다 양질의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2023년부터는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했고, 기존 방식을 대체하는 형식의 변화는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장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소액다건이 아닌 예산 규모를 확대한다면, 과연 참여하는 지방문화원에는 어떠한 미션과 역할을 주어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화원의 현실에 맞는 것일까? 또는 문화원의 장점을 살리면서 지방문화원이니까 가능한 사업이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것은 무엇일까? 사업예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기존에 해오던 것을 강화하고 안 해본것을 통해 문화원의 경험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방문화원 지원 육성에 관한 기본계획’(2021)에 따르면, 지방문화원 현황 진단에서 지방문화원은 지역민지역문화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풍부한 원천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지만 부족한 인력과 지역문화기관 및 단체의 증가로 인한 기능 중복과 경쟁의 위협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책 방향성으로 ‘지방문화원의 강점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발굴’, ‘지역내 문화기관과 협력관계 확대’ 등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자료에 따라 지방문화원이 가진 지역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부족한 인력구조를 보완하고 지역 내 문화기관과의 협력의 중심 역할을 경험하도록 “2023 문화가 있는 날_지역협력형 기획사업”이 탄생했다.

사업의 기본 조건은 지방문화원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있는 날’을 매개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기관·단체(7개 이상)가 참여하는 지역협의체를 구성하여 함께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방문화원은 지역의 문화중심 기관으로서 역할을 이어가고, 참여하는 각 단체 및 기관들은 협력사업을 통해 상호 역량을 강화하고 공동운영을 통한 시너지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은 양질의 프로그램을 경험함과 동시에 지역문화의 다양성 및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와 함께, 다소 막연한 미션이 어려울 수 있는 지방문화원을 위해, 사업선정 과정을 보다 촘촘히 설계했다. 총 3차(1차 서류, 2차 컨설팅, 3차 PT)에 걸친 심사과정을 통해, 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지방문화원이 기존 문화원 단독으로 하던 대로의 관습에서 벗어나, 늘어난 예산과 사업 미션을 각 지역별로 참여단체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심사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진행될 사업방향과 방법을 보다 구체화 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최종 선정된 4개 문화원에는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전문가 현장컨설팅을 지원했다. 동 사업에 참여하는 지역기관 및 단체가 함께 자리한 현장컨설팅에서 동 사업의 취지와 함께, 문화원과 참여기관의 역할 및 공동의 목표에 대해서 소개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산 금정문화원: 금정산성 18845 브랜드 가치 찾아

. 금정_행사 사진

. 금정_행사 포스터

부산의 금정문화원에서는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인 금정산성을 소재로 지역의 청년단체와 지역문화재단과 협업한 문날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국내 최대 길이인 금정산성의 실제 길이 18,845m와 역사 자원의 가치를 지역 주민에게 알리고자 했던 당초 계획은 2차 심사로 진행된 컨설팅을 통해 방식과 장소가 변경되었다. 문화원은 교육특구, 대학가가 많은 금정구의 특징을 반영하여 젊은 청년이 많이 몰리는 온천천 어울마당에서 [18845 문화day_슬세권에서 마음껏 노닐다!]라는 주제로 금정산성의 역사적 가치와, 지역 명주인 금정막걸리를 매개로 젊은 청년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기존 문화원 인력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금정문화재단과 협업을 통해 지역 내 다양한 청년문화단체를 만나서 지역적 특성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며 행사를 공동으로 기획했다. 또한 지역에 있는 대동대학교 호텔 소믈리에&바리스타학과 학생들과 함께 전통 막걸리에 맞는 상차림도 시연하며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문화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청년세대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 어르신 중심의 문화원 이미지를 젊게 충전하고 지역사회에서 문화원의 역할과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지역 주민들에게 금정산성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금정지역을 상징하는 아이템을 발굴하는 계기가 되었다.

충남 예산문화원: 축제기획학교와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 개발

. 예산_문날 행사 사진

충남 예산문화원에서는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축제기획학교의 주민 기획자 그룹과 함께 [예산문화점빵:소확행]이라는 주제로 문날 프로그램 진행했다. 예산은 군 단위의 지역으로 내포신도시 개발 등으로 젊은 층의 유입은 늘어나고 있으나, 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수용할 수 계기가 많이 부족했다. 이에 예산문화원은 기존 발굴·수집한 예산의 역사 인물과, 지역 문화동아리, 지역명소와 연계한 월별 테마를 기준으로 주민기획자와 지역작가, 협동조합 등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기획했다. 전체 행사의 틀과 구성은 문화원이 중심을 잡되, 참여하는 단체 및 주체들에게 세부 프로그램 기획공모를 추진했고, 협의를 통해 선정된 내용으로 전시 및 체험,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예산 지역축제도 함께 기획하고 준비한 경험이 있던 터라 협의와 준비의 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이 진행되었다. 축제기획학교에 참여한 주민 기획자들 대부분이 새롭게 유입된 젊은층이 많았던 관계로,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새롭게 기획되었다. 문화원은 이들이 자유롭게 문날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면서 기존 문화원의 한계를 넘어 지역주민 생활 속으로 밀착한 문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다.

전남 완도문화원: 섬섬마다 문화로 가득히, 지역의 숨은 인재 발견

. 완도_모닥모닥 섬대대축제 메인포스터

. 완도_모닥모닥 섬섬대축제_체험

전남 완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265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어진 지역으로 문화활력지 수가 취약한 곳이다. 완도문화원은 문화원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섬마을로 직접 찾아가는 문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때, 부족한 기획인력과 운영 일손을 완도로 귀촌하여 살아가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찾아내 워킹그룹으로 참여시키는 것으로 보완했다. 여기에는 뮤지컬 배우, 음악가, 전래놀이 강사 등 다양한 숨은 지역 인재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각 섬의 특징은 무엇인지, 해당 지역주민들은 어떤 문화프로그램을 원하는지, 또한 해당 지역의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등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구성해보라는 현장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약산’, ‘소안’ 등의 지역을 직접 찾아가 지역주민의 의견도 들어보는 등 직접 발로 현장을 뛰었다. 또한 워킹그룹 워크숍을 통해 사전 프로그램 체험도 해보고 보완사항 및 각자 역할을 조율하며 하나씩 협업의 틀을 만들어갔다. 이와 함께 각 섬마다 있는 문화원 회원들을 활용, 다양한 문화시설 및 기관(국립공원공단, 소안항일운동기념관, 마을이장회, 주민자치센터, 약산치유의 숲 등)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유도, 지역적 특성(지역 자생 약초차체험, 힐링콘서트, 소안무궁화마그넷, 역사특강 등)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기획, 운영했다. 추후 이들은 문날 행사 기획,운영 경험을 살려 지역교육청의 초청 프로그램 및 문화재청 공모사업에도 함께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연계 협력의 틀을 이어가고 있다.

경남 산청문화원: 협의체와 함께 문화로 꽃 피운 지역문화 네트워크

. 산청_곶감다식 및 차시음

. 산청_국악당 힐링캠프

경남 산청은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 농촌지역으로, 산청문화원을 중심으로 산청지역의 역사와 지역적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지역 내 다양한 문화예술단체들과 함께 산청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체감할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했다. 5월에는 산청지역의 역사와 문화자원을 활용한 ‘산청아 놀자’, 6월에는 국악계의 위인 박헌봉 선생을 소재로 한 ‘전통아 놀자’, 10월에는 목화 시배지인 산청의 특징을 활용하여 ‘목화야 놀자’라는 세부 주제를 바탕으로 총 14개 단체가 13건의 행사를 함께 진행했다.
지역협의체에 참여한 이들은 본격적인 문날 행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참여단체 실무자만을 위한 문날 체험 워크숍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문날 사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몸소 깨닫고, 공동 기획운영 과정을 통해 문화역량을 강화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의 가치를 경험했다. 이후 기산국악당은 전통 국악 프로그램을, 지리산도서관은 산청 곶감을 활용한 인형극과 체험 프로그램을, 지역의 공방은 지리산에서 나는 약초를 활용한 염색과 산청의 고령토를 활용한도자기체험 등 각 협력기관의 특색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때 산청문화원은 기존 문화원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하던 방식을 바꿔 문날 사업의 주관기관이자 협의체의 중심축으로써, 각 단체별 진행 상황을 조율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당초 A부터 Z까지 행사의 모든 것을 총괄하던 것에서, 협력기관에게 자율성을 주고 해당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형태로 한 발 물러나 기존 문화원 직원들의 업무 강도는 줄이되,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질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업방식의 변화는 지역주민들이 지역의 다양한 문화기관·시설을 통해 양질의 문화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게 했으며, 더불어 산청지역의 문화적 특징과 가치를 발견하며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보다 더 잘 알게 했다. 또한 참여한 기관(단체)들은 문날을 매개로 형성한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자발적으로 사업을 연계해나가고 있다.
한편, 산청지역의 문날 프로그램의 대상이었던 장애인거주시설 ‘이레마을’의 장애청년들은 5월엔 프로그램 수혜자로 참여했으나, 6월에는 기산국악당에서 펼쳐진 국악공연의 합창공연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프로그램의 수혜자에서 주체자로 변화하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형식의 변화, 안 해본 것을 하는 것

변화의 요구에 따라 호기롭게 지방문화원의 강점과 자원을 활용하여 문화원이기에 잘 할 수 있는 사업을 해보자고 시작했지만, 막상 어느 부분까지 가능하다고 받아들일지 걱정됐다. 이에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해왔던 것을 하면서 막상 현장에서는 쉽게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는 것으로 사업의 방식과 틀을 바꿔봤다. 총 3차에 걸친 심사과정을 통해 단순히 지역 기관(단체)과 공동 진행, 업무 분장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접근법을 달리해 주길 요청했고, 현장 컨설팅을 통해 지속적으로 동 사업에서 문화원의 역할과 참여기관 및 단체의 역할을 고민하게 했다.
참여문화원들은 기존에 문화원 혼자서 추진하던 사업 방식을 벗어나 문화원 내부에만 국한된 시야를 지역의 다양한 기관 및 단체로 넓혔다. 비록 실무 인력은 부족하지만, 지방문화원이 오랜 기간 지역문화사업을 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단체와 지역의 인적자원 등을 결합하는 중심축의 역할을 하면서 문화원의 인지도와 역할을 알렸다. 이를 통해 문화원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며, ‘협력’,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기존 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도전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해왔던 것을 바탕으로 조금만 시야를 넓혀 형태와 방식을 바꿔보면, 또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2023 문화가 있는 날_지역협력형 기획사업’에 참여한 4개의 문화원은 기존 사업 방식의 변주를 통해, 지방문화원이 지역사회 내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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